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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자인권운동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뉴스레터] 연분홍치마 다큐 프로젝트 <F2M>(가제)


글 :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 연분홍치마
 

스스로에게 조화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이것은 매우 소박하고 간결한 듯 보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막연한 두려움과 혼란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힘겨운 세월을 보내게 만드는 욕망이기도 하다. 2년 남짓 성전환자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이 당연한 욕망이 얼마나 특별하고 가혹한 것인지를 느낄 때가 많았다.

우리는 2006년 몇몇 인권단체와 개인 활동가들과 함께 성전환자 인권 실태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이 조사를 하면서, 다큐멘터리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생물학적 여성의 육체를 갖고 태어났지만, 타인에게 인식되는 성 혹은 스스로 인식하는 성이 남성인, 소위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이다. 그 당시 우리는 하리수씨와 같은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 보다 ftm 트랜스젠더에게 훨씬 더 많은 질문과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여성 육체' 혹은 여성이라는 위치를 통한 경험에서 무언가 교차되는 것을 느꼈고, 그 속에서 그들의 삶을 상상하기가 수월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 교차지점은 여성 육체 혹은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오는 '불편함'같은 것이었다. 물론 비성전환(생물학적) 여성과 ftm 트랜스젠더의 경험이 유사하거나 겹쳐지면서 공유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은 분명 다른 경험이다.

하지만 비성전환(혹은 성전환) 여성의 삶은 일상적인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어서, 비성전환 여성들은 때때로 남성으로서의 삶을 상상해보기도 하지 않은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필 때,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을 때, 생리할 때, 남동생에게 저녁을 차려주지 않는다며 핀잔들을 때 등 말이다. 말하자면 여성들 스스로의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ftm 트랜스젠더의 삶과 욕망을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해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의 기획의도가 되었다. 여성과 ftm트랜스젠더가 함께 젠더 이분법으로 발생하는 여러 차별과 억압의 지점을 공유하고, 그것을 해결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서로 모색하면서 성전환자 인권운동의 방향성을 고민해보고자 하는 것 말이다. 우리는 그 때 만났던 ftm 트랜스젠더 가운데 우리의 의도에 동의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고 싶은 세 명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그들은 김영철(가명), 한세현(가명), 고준현(가명)이다.





김영철(가명)씨는 처음 인터뷰를 하던 날, "제가 식당에서 밥을 양껏 먹기에 '여자'는 불편했어요. 그게 제가 성전환한 이유 중에 하나에요"라고 말했다. 지금껏 들어보았던 성전환을 결심한 다양한 이유나 계기들 가운데 가장 이해하기 쉬운 말이었다. 자신이 남성이었다면 매우 적당량이었을 텐데, 여성이기 때문에 핀잔을 듣는 것이 억울했다고. 농담처럼 던지는 그의 말이 그가 성전환을 결심하게 된 맥락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길잡이를 해주었다. 그는 남성 호르몬을 투여하기 전부터 굉장히 남성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불편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회사에 면접을 보러갈 때면, 소위 정장을 입어야 하는데, 여자 정장은 어울리지 않아서 도저히 입을 수 없고, 어울리는 의상은 남자 정장이지만,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입기 곤란했다고 한다. 남자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보러간 적도 있는데, 남자인줄 알았다가 주민등록상 성별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면접관들이 모두 의아했다는 거다. 그리곤 면접에서 탈락했다고. 더욱이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입사해도, 여직원들은 치마 유니폼을 입는데,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런 그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장 편안한 모습(제스쳐, 취향, 태도, 목소리 등)을 찾았는데, 그것은 여성이기 보다는 남성일 때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혔다. "만약에 한국사회가 이렇게 남녀 구별이 확실하지 않았다면, 나는 성별변경하지 않았을 거에요."

한세현(가명)씨는 보다 더 정확하게 이러한 점을 지적했었다. "같은 것을 해도, 여자들은 훨씬 더 잘 해야해요. 그래야 멋져보이는 게 있었죠." 그 역시 어렸을 때부터, 치마입기를 거부하고 훨씬 더 자유롭고 활동적이며 골목대장 노릇을 도맡아 하곤 했는데 그것이 자신에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는 거다. 돌이켜보았을 때,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이러한 모습들은 분명 '여성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고준현(가명)씨는 "만약 내 주변에 여자들이 선머슴같지 않았다면, 내 정체성을 빨리 깨달았을 수 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자신의 학창시절에 주위의 친구들이 전부 남성적인 성향이 강했고, 외모 역시 '중성적'인면이 많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스스로 자신의 성정체성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생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서 자신이 성정체성을 깨닫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 듯 하다고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해석한다. 그는 만약 자신과 선머슴 같았던 친구들과의 변별성을 빨리 찾을 수 있었다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좀 단축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처음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때, 우리는 세 명의 주인공들과 함께 여성적 경험과 ftm트랜스젠더의 경험의 교차점을 토론하기도 했는데, 간혹 우리의 의도가 오해받은 적도 있다. 처음에는 그들이 우리의 의도를 오해하는 것이 '억울'할 때도 있었다. 교차점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그들의 성정체성을 의심하거나 '남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이에 대해 한세현(가명)씨는 "한국 사회에서 ftm 트랜스젠더는 항상 스스로 남성임을 증명해야해요, 항상 질문을 받죠. 왜 남자가 되었어요? 언제부터 남자였어요? 어떻게 스스로 남자인줄 알아요? 이런 질문들은 너무 지쳐요. 항상 분명하게 답을 해야해요. 그건 여성성을 부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에요"라면서, 우리의 의도와 ftm트랜스젠더 사이에서 오해의 지점이 발생할 수 있는 맥락을 설명해주었다. 또한 고준현(가명)씨는 "의혹의 눈길로 보였어요. 내가 남성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해서 화도 났구요"라고 털어놓았다. "내 안에 여성적인 면도 많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것을 인정하기가 힘들어요. 그것을 인정하면 남성임을 증명하기가 더 어려워지잖아요. 그냥 나에게 자연스러운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라면 김영철(가명)씨는 표현할 적절한 언어가 없음을 토로하였다. 자신을 분명하고 단일한 정체성을 설명하지 않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할 수도, 인정받을 수도 없게 만드는 분위기, 그것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트랜스젠더가 살아가야 하는 조건일 것이다.

우리가 여성영화제라는 장에서 이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기로 한 의도 역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의도와도 비슷하다. 여성영화제가 여성과 ftm 트랜스젠더 사이에 유사하거나 교차되는 경험들을 서로 공유하고 고민하며, 서로가 자신들의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성전환자 인권운동의 연대와 방향성을 모색하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내년 여성영화제에서 이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장면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곳에 이해와 교감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