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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전 활동기록/다큐 < 마마상> 제작일지

[촬영일지1] 제2의 이태원을 꿈꾸는 거리

송탄관광특구로 향하는 길


경기도 평택에 소재한 미군기지는 두 곳이다. 미 제7공군 사령부, 일명 K-55와 캠프 험프리, 일명 K-6이다. 연분홍치마가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곳은 K-55 정문앞 기지촌이다.

K-55 (Osan Air Base)는 한국 내에서 단일기지로는 가장 크다. 2백만 평 규모, 그러니까 여의도 순수면적(약 90만 평)의 두 배가 넘는 넓이로, 필리핀의 클라크 공군기지가 폐쇄된 이후로는 태평양지역에서도 가장 큰 공군기지로 알려져 있다. 1952년 한국전쟁 중에 주둔하기 시작하여, 통칭 K-55로 지명되었다가 1956년 후반 지금의 오산 미공군기지로 이름이 바뀌었다. K-55 정문 앞, 즉 평택시 신장동 지역의 기지촌은 1990년대 들어, 그 규모가 계속 커져가는 산업화된 기지촌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이곳은 1997년 관광특구로 지정되었으며, 실직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위기상황에 몰린 여성들이 가장 많이 유입되는 지역이다. 그 뿐만 아니라, 아직 자립의 준비가 되지 못한 과거 기지촌 여성들 역시 이 지역으로 다시 유입되고 있다. 이 여성들은 때때로 기지촌 성매매 메커니즘의 중요한 연결고리로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중적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제2의 이태원을 꿈꾸는 거리

경부고속도로 오산(송탄)톨게이트를 지나서, 산업도로를 약 15분가량 달리다보면, 송탄관광특구와 오산비행장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처음에 갈 때는 초행길인만큼 헤매이지나 않을까, 긴장했던 적도 있는데, 수차례 다니다보니 경치를 구경하는 여유까지 생겼다.  (사진-성희-도로이정표) 이정표가 알려주는 대로, 우회전을 하면 무언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커다란 구름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막 지나면, 두 갈래로 길이 나뉜다. 직진하면, 바로 K-55 후문으로, 그리고 좌회전을 해야 K-55 정문과 기지촌이 나오게 된다. 정문과 기지촌에 가기 전에, 이곳 주민들이 '구장터 사거리'라고 부르는 곳을 지나게 된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인데, 그곳은 구한말에 당시에 옛 장터가 있었던 마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1952년 한국 전쟁 중에 미군부대가 들어오면서, 정문 앞에 새로운 시장이 생겼다. 이곳을 새롭게 들어선 장터라는 의미로, ‘신장(新場)’이라 불렀다. 말하자면, 미군기지 앞에 자연스레 생계를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기지촌은 바로 이 신장터가 변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의 지명인 신장동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구장터길을 지나면, 언덕이 나오고 그 고개를 너머서면 바로 미군기지 정문이다.

K-55의 정문은 현재 공사중이다. 이곳의 한 주민의 말에 따르면, 안정리 K-6 쪽으로 '게이트'가 생기는데, 그곳이 정문으로 바뀔거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 현재 이 정면 마주하고 쇼핑몰의 시작을 알리는 커다란 철재 구조몰이 서있다. 이 구조물을 지나 천천히 걸어보면, 그 깔끔한 외모의 거리에 들어서게 된다. 이 거리는 너무 익숙해서, 낯설다. 이태원을 축소해서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맥도날드, 버거킹, 롯데리아와 같은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점퍼나 핸드백 같은 가죽물건 할인점, 악기 할인점, 한국기념품 상점, 환전소, 옷가게, 외국인 전용 클럽 등. 송탄 신장동의 기지촌이 이렇게 말쑥하게 단정한 것은 1997년으로, 이때 문광부에서 관광특구로 지정되었고, 재개발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재개발을 한 이유는 과거와 달리, 교통편이 좋아지면서, 주말이면 미군들이 이태원으로 쇼핑을 하러가는데, 마치 이태원과 같은 분위기의 쇼핑몰을 개발하면, 수익이 더욱 좋아질 것이라는 계산 하에, 이렇듯 개발을 했다.

약 300m가량 되는 이 기지촌 쇼핑몰은 철길을 마지막으로 끝이 난다. 이 철길을 경계로 숯고개와 나뉜다. 이 철길의 역사는 더 조사되어야 하지만, 적어도 이 철도의 기능은 미군부대로의 군사물자의 수송수단이었으며, 동네와 동네 뿐 아니라 미군부대지역과 옛 농촌지역을 나누는 경계이기도 했다. 이 지역에 20년 정도 살고 있는 한 주민의 말에 따르면, 기름을 실고 미군부대로 들어가는 기차를 종종 보았는데, 그 기차가 어느 순간 부터 다니지 않았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 생경한 느낌의 부대주변과 옛 지역의 연결고리는 신장육교였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신장육교보다 커다란 고가도로가 여러 개 생겼지만, 6, 70년대 신장육교는 경이로운 볼거리였을 것이다. 철길에 의해서 갈라진 농촌과 기지촌은 이 육교에 의해서 연결되었다. 기지촌 저편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 육교를 건너는 것 자체가 진기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 육교를 건너면 농촌풍경은 사라지고 흰색, 검정색의 피부를 가진 외국인과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고, 그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공간 이동이었다. 그 세계에는 번쩍번쩍하는 간판들, 헐렁한 군복바지, 쵸콜릿, 츄잉껌, 햄, 소세지, 치즈같은 물건들이 넘쳤다. 그런데 바로 그 육교가 철거되고 있다.

이렇게 철재 구조물로 시작해서 철길에서 끝이나는 중앙로 사이에는 골목들이 늘어서 있다.  이 골목들은 재개발되기 이전의 시장형태를 아직도 띄고 있다. 그래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보면, 중앙로 입구에서 받은 첫인상은 가식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왜냐하면 중앙로는 기지촌 특유의 느낌이 지워져있지만, 골목에는 기지촌이라면 으레 상상되는 것들로 가득차있기 때문이다. 미군들을 위한 음식점들, 그리고 그들을 배려하는 영어메뉴판, 클럽에서 일하는 댄서들을 위한 옷가게 등. 이렇게 송탄 기지촌의 겉모습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소비도시의 모습을 띄고 있다. 하지만, 소비도시로서의 모습에서 한꺼풀을 벗겨내보면, 그 속에는 성적으로 위계화된 역사와 사회 속에서 억압받고 있는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