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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전 활동기록/다큐 < 마마상> 제작일지

[촬영일지2] 기지촌 성매매 피해 여성의 세상과 소통하기


기지촌 성매매 피해 여성의 세상과 소통하기

생계를 위한 최후의 보루이자, 언니들을 세상으로부터 유배시킨 기지촌. 그러나 이제는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기지촌. 이 기지촌에서 언니들은 ‘혼자 사는 늙은 여자’가 되어, 자신의 생계와 노후 그리고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언니들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말하고 표현하기도 전에,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기지촌이 변했다’, ‘이제 한국 여자는 없다’, ‘외국인 여성들뿐이다’라는 식으로 언니들의 이야기를 서둘러 역사 속에 묻어버리려 한다.

약 10개월 정도 기지촌에서 기지촌 혼혈인 실태조사를 하는 동안, 우리에게 도움을 준 많은 언니들은 침묵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떤 언니들은 “언젠가 나중에 자서전 같은 거 쓰고 싶어”라며, 자신의 삶과 교감할 누군가를 간절히 원했다. 어떤 언니들은 처음에도 입술을 앙다물고 손만 절레절레 흔들었다가도, 한국정부의 기지촌 정책이라는 주제로 이야기할 때는 봇물 터지듯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어떤 언니들은 그동안 특정한 목적으로 기지촌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에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하며,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떤 언니는 미군 남성과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언니들은 한국 정부, 미군, 전쟁에서부터, 혼혈인 자녀의 양육, 기지촌 생활, 미래에 대한 계획 등 정말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 언니들은 단순한 ‘증언자’도, ‘희생자’의 모습도 아니었다.

언니들의 다양한 경험을 들으면서, 우리는 언니들의 존재와 삶을 가리고 있는 어두운 막을 걷어내도록 돕고,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통로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언니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말한다’는 것을 고민하였다.
‘언니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것을 고민하였다.
'언니들이 스스로 말하고, 그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고민하였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언니들과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으로서 다큐멘터리가 조심스럽게 거론되었다.

사회적 도덕적 비난이 쏟아지고, 낙인이 찍히는 성문화 풍토 속에서 언니들의 모습을 이미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촬영이 끝난 이후, 우리는 어떤 지속적인 활동을 해야 하며, 또 언니들과 어떤 만남을 지속해야하는 것일까. 이주 여성들이 촬영에 동의할 때, 우리는 그 동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많은 우려와 망설임 속에서도, 다큐멘터리는 언니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이미지의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렇게 언니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언니들과 우리가 교감하려 할 때, 다큐멘터리가 매개로서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촬영원칙일 것이다.

촬영원칙은 ‘동의’와 관련된 문제이다.
‘언니랑 인터뷰한 거 다큐멘터리에 써도 되요?’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들었다하더라도, 이것을 곧 ‘동의’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 좋은 언니들이 우리를 ‘믿고’, 자신의 얼굴을 맡기는 것, 이것은 동의이지만, 동의가 아니다. 마마상을 통해 소개받은 이주 성매매 여성이 촬영에 응하는 것, 이것은 동의이지만, 동의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원칙적으로 성매매 피해 여성들이 얼굴 및 신상을 노출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언니들의 ‘목소리’만을 드러내기로 한 것이다. 진정한 동의는 반성매매 운동을 지지하며 그 결과 적극적인 생산자로서 다큐멘터리에 참여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부담감, 말하자면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형식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고, 다큐멘터리 작업 기간이 예상보다 상당히 길어질 것이라는…각오…했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이러한 원칙이 지켜졌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언니들과 함께 하는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