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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전 활동기록/다큐 < 마마상> 제작일지

[촬영일지3] 축제의 다양한 목소리, 그 속에 생략된 것들

평택 평화 페스티발 포스터



축제의 다양한 목소리, 그 속에 생략된 것들

우리가 현재 촬영하고 있는 송탄 K-55(오산 공군기지)에 근접한 안정리 K-6(캠프 험프리)는 긴장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제 2의 부안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말해주듯이, 지역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있다. 안정리 쇼핑몰의 상인들의 입장과 팽성읍 대추리 농민들의 입장이 너무나 상이하다. 하지만 이것은 몇몇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단순한 경제적 이권 문제가 아니다. 주한미군기지 평택의 집결은 주민들의 평화로운 삶을 위협하는 것이며, 다양한 소수자들을 희생시키고, 그 일상을 군사화하여, 또 다른 착취구조를 견고히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29일, 30일 이틀 동안, “이라크파병과 주한미군기지 평택집결을 막아내고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에 연대하기” 위한, ‘평택 반전평화축제’의 장, 그 곳에서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이 만드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해 좋은 만남과 뜻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다.

29일, 오후 4시경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주차량과 엄청난 참가자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활기차고 쾌활하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혼잡했다. 행사장 입구인 주차장에서 우리는 어리둥절해져서 잠시 갈팡질팡하였다. 장소가 갑작스레 바뀌는 등의 우여곡절도 있었고, 또 대규모 집회이니, 복잡한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엉뚱하게 와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전경버스와 대규모 전경들이 이 혼잡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것인데, 30일 날 기지주변을 도는 ‘평화행진’에는 병력 20개 중대, 2400여명을 배치하고 울타리 앞에 전경버스 60대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하기 바로 몇 시간 전에는 ‘거북이마라톤’ 충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택 종합운동장을 출발해서 평택역을 경유하는 거북이마라톤에 부시와 노무현의 가면이 등장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이 갑자기 부시 가면을 무리하게 빼앗아 달아났었고, 참가자들은 가면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며 평택역 앞에서 한 시간 가량 시위를 했다는 것이다. 참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다. 결국 평택역 앞의 교통 혼잡과 참가자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부시가면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밖과 달리, 행사장 안은 그야말로 잔치였다. 자유롭게 흩어져서 산만하면서도 흥겨운 분위였다. 행사장 안쪽 입구에는 또 다시 영토를 빼앗길 수 없어, 미군기지확장반대를 절박하게 외치는 농민들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부안주민들, 이주노동자, 여성회, 장애인, 공부방 아이들, 새만금, 민주노총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였고, 부시의 낙선운동,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한 후원모금, 여성의 몸과 환경에 친근한 생리대를 제시하는 등 정말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평화콘서트는 밤새 진행되었고, 어느 새 무대의 위와 아래의 구분이 사라졌다.

그런데 평화를 위해 모인 이 소중한 자리에서, 당혹스러운 사건들이 있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은 미군범죄를 알리기 위한 사진전을 개최하였다. 그 가운데 마클사건을 알리기 위해서는 윤금이씨의 주검사진이,  장갑차사건에는 미선씨와 효순씨의 주검사진이 게재되었다. 영정사진이 아닌…. 어느 단체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서너 명의 대학생이 평통사에 강력하게 항의를 하였다. ‘평통사’는 연신 해명으로 위장된 변명을 했다. 한 시간여 후에 다시 가보았을 때, 윤금이씨 주검사진은 다행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미선씨와 효순씨의 주검 사진은 여전히 게재되어 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평통사’의 주된 주장은 1) 이전비용 전액부담 반대, 2) 320만평 대체부지 제공 반대, 3) 용산기지 축소 통폐합 이전, 4) 협상안 전면 공개였다. '평통사'의 주된 주장 속에는 오직 한국정부와 미국정부만이 주체로 우뚝 서있다. 이 관계에서 평화란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명분이며, 제시될 수 있는 대안은 '굴욕적 외교'를 '바로잡는'것일 뿐이다. 과연 양국간의 군사외교 협상의 결과물에 대한 반대의 논리로 설명되는 평화가 ‘진정한’ 의미에서 평화라 할 수 있을까. 언제든 국가의 군사주의적 안보논리로 대체될 수 있으며, 국가간의 힘이 균등한 상태를 평화라 부른다면, 그 속에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끝끝내 담기지 못할 것이다. '평통사'의 주장 속에는 소수자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설사 의도치 않았다하더라도 이미 소수자의 목소리를 가로막는 장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위 ‘민족’과 국가적 안보논리 앞에서 너무나도 작아지는 소수자의 목소리 말이다.

'평통사'의 이같은 주장을 이어가는 듯, 그날 밤 열린 평화콘서트에서는 ‘Fucking U.S.A'가 울려 퍼졌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불렀다. 미군범죄의 잔혹성을 알리는 정치 선전물이 되어버린 여성의 몸. 그리고 미국을 비난하기 위해서 여성의 육체를 강탈하는 언어와 은유의 사용. 민족주의 진영과 우리는 '느끼는' 문제의 지점과 무게감에서 ‘여전히’ 다른가 보다.

그 뿐만 아니라, 부시의 낙선운동을 주장하는 한 단체는 부스의 테이블 위에, 어처구니없는 인형을 전시하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한 부시가 남성에 의해 강탈당하는 여성처럼, 엉덩이를 내밀고 엎드려 있었다. 그 내민 엉덩이는 드러난 채 볼펜이 꽂혀 있었다. 아마도 그 볼펜은 서명을 받을 때 쓰는 모양이었다. 부시 낙선운동 주체들은 이것을 풍자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동안 부시를 비난할 때  혹은 미국에 의한 이라크 침범 등에서 국가간 불평등 관계를 비판할 때, 풍자적인 이미지가 사용되곤 한다. 풍자는 효과적인 비판의 수사이다. 그런데 최근의 이러한 풍자의 수사는 대개가 성적 희화화였다. 비판의 지점이 무엇이든, 그 희화화의 대상은 언제나 육체를 강탈당하는 여성적 위치에 놓여있었다. 이렇듯 폭력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평화운동을 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평화콘서트 무대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 했던 우리의 일행은 술에 취해있는 ‘무시무시한’ 손으로 ‘앉으라는’ 위협을 받았다. 몸을 최대한 숙였지만, 뒤에 있던 사람의 시야를 가렸던가 보다. 단지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배려를 요구할 수 없다. 이해를 요구할 수 없다. 그러나 ‘잠시’ 시야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위협당하고 공포심에 휩싸여야 할 이유 역시도 없다.  

일각에서는 평화축제였던 만큼, 평화롭게 시작해서, 평화롭게 끝났다고 전한다. 평화로운 오색의 잔치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소수의 목소리가 배제당하는 폭력을 보았고, 경험했다.